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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가 할 수 있는 걸 안 한다는 걸 알면서도, 화를 내는 게 맞는 건지 그냥 해줘야 하는 건지 매번 헷갈립니다. 저도 그랬습니다. 첫째가 5살이 됐는데도 양말 하나 혼자 못 신겠다고 뒤집어지듯 우는 걸 보면서, 이게 진짜 못 하는 건지 하기 싫은 건지 그 경계가 너무 헷갈리더라고요.

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짜증을 내는 아이, 문제일까요?
아이가 뭔가 잘 안 될 때 짜증을 내거나 포기해버리는 모습, 솔직히 처음엔 저도 그냥 떼쓰는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.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보이더라고요.
아이들 중에는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그림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. 이상이 높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. 문제는 그 이상과 지금 자신이 실제로 해낼 수 있는 수준 사이의 갭(gap), 즉 인지 불일치가 발생할 때입니다. 여기서 인지 불일치란 머릿속에 그려진 결과물과 현실에서 손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달라서 오는 좌절감을 말합니다.
제가 첫째를 보면서 딱 이 장면이 반복됐습니다. 전에 잘 하던 블록 놀이를 갑자기 "못하겠다"고 하는 거예요. 처음엔 귀찮아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서 더 화가 났는데, 사실은 그때 아이가 더 완성도 높게 만들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포기 선언을 해버린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. 아이를 잘못 읽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금도 좀 마음에 걸립니다.
출처: 한국연구재단 학술지 KCI에 수록된 유아 발달 관련 연구에서도, 만 4~6세 아동은 자기 기대 수준이 급격히 높아지는 시기로, 이 시기에 실패 경험이 반복되면 회피 행동(avoidance behavior)이 굳어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. 회피 행동이란 어렵거나 실패할 것 같은 과제를 아예 시작하지 않으려는 패턴을 말합니다. 이게 습관이 되면 나중에 훨씬 더 다루기 어려워지는 거라 저도 당시에 꽤 걱정이 됐습니다.
자기주도 성향이 강한 아이, 왜 그렇게 의존적으로 보일까요?
저희 첫째를 보면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. 분명히 자기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집요하게 파고드는데,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바로 "엄마 해줘"로 돌변하거든요.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한동안 정말 몰랐습니다.
자기주도성(self-directedness)이란, 외부의 지시보다 자신의 내면 동기에 따라 행동을 조절하는 성향을 의미합니다. 이 성향이 강한 아이는 자신이 관심 있는 영역에서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지만, 반대로 자기 세계가 강하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이나 도움 요청에 덜 민감할 수 있습니다. 한마디로, 관심 없는 건 정말 손도 대기 싫은 거예요.
그러니 이 아이가 "해줘"라고 하는 맥락을 잘 봐야 합니다. 정말 해결 능력이 없어서 그러는 건지, 아니면 지금 자기 머릿속에 있는 더 높은 목표를 이루고 싶은데 이 작은 단계에 에너지를 쓰기 싫은 건지가 다릅니다.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. 첫째는 만들기 할 때 테이프 붙이는 위치 하나도 꼼꼼하게 따지면서 고치는 아이인데, 그 옆에서 양말은 못 신겠다고 하는 거거든요.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였던 것입니다.
다만 이런 성향이 강하면 공감 능력 발달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. 자기 세계에 몰입하면 상대방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. 이건 강점이기도 하고 과제이기도 한, 양날의 성향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.
- 자기주도 성향이 강한 아이는 관심 영역에서 몰입력이 뛰어납니다
- 의존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실은 우선순위 조정일 수 있습니다
- 자기 세계가 강할수록 공감 능력은 별도로 키워줘야 합니다
-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쓸 곳을 스스로 고르고 있는 것입니다
단계적 접근, 말은 쉬운데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?
아이에게 "지금은 안 돼"라고 말하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. 저도 처음엔 그냥 "너는 할 수 있어" 아니면 "지금은 안 돼"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. 근데 그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.
단계적 접근(scaffolding)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. 여기서 스캐폴딩이란 건축 현장의 비계(scaffolding)처럼, 아이가 혼자 서기 전까지 딱 필요한 만큼만 받쳐주다가 단계적으로 지지를 줄여나가는 교육 방식을 의미합니다. "너는 저걸 만들 수 있어,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. 지금은 이 단계를 먼저 배워야 해"처럼 가능성은 열어두되, 지금 당장은 여기까지라는 경계를 명확히 해주는 거예요.
제가 직접 써봤는데, 이게 생각보다 아이 반응이 달라집니다. "안 돼"만 들으면 아이는 거절당했다는 감정만 남는데, "나중엔 할 수 있어, 근데 지금은 이 단계야"라고 하면 아이가 좌절 대신 다음 단계에 대한 기대감을 갖더라고요. 물론 매번 이렇게 차분하게 말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.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. 제 마인드 컨트롤이 먼저 돼야 이 말이 나온다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.
출처: NAEYC(미국유아교육협회)에서는 유아기 스캐폴딩 전략이 문제해결능력(problem-solving ability)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. 문제해결능력이란 아이가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는 능력으로, 이 능력은 혼자 다 하게 두거나 전부 도와주는 방식이 아니라, 딱 한 발짝씩 앞서가는 단계적 지원에서 길러집니다.

훈육할 때 감정이 섞이면 아이는 뭘 배울까요?
훈육 중에 제가 가장 많이 실수하는 부분이 이겁니다. 아이를 가르치려다가 제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는 것입니다. 화가 나서 말을 하면, 아이는 그 상황에서 배워야 할 걸 배우지 못하고 "엄마가 나한테 화났다"는 감정만 기억하게 됩니다.
훈육(discipline)의 어원은 라틴어 'disciplina', 즉 가르침입니다. 처벌이 아니라 가르침이 본래 뜻입니다. 그런데 실제로 아이 앞에서 그걸 유지하는 건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. 특히 아이가 눈을 피하면서 딴 데를 볼 때, "아빠 봐, 엄마 봐" 하다가 목소리가 높아지고, 그러면 아이도 덩달아 더 격해지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. 제 경험상 이 순간에 부모 먼저 숨을 한 번 고르는 게 진짜 필요합니다.
또 하나 중요한 게 있습니다. 아이를 훈육할 때 다른 불순물이 섞이면 안 됩니다. 예를 들어 "네가 그러니까 아빠한테 혼났잖아"처럼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방식이요. 아이는 그 상황에서 자기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배우지 못하고, 특정 사람에 대한 부정적 감정만 쌓이게 됩니다. 이게 2차적 정서 문제(secondary emotional problem)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. 여기서 2차적 정서 문제란 본래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채 다른 감정(불안, 분노, 우울)이 덧씌워지는 것을 말합니다.
제가 지금도 지키려고 노력하는 건, 훈육할 때는 아이 얼굴을 잡고 눈을 마주친 다음에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. 단, 그 전에 저 자신이 먼저 충분히 진정된 상태여야 한다는 게 전제입니다. 마인드컨트롤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이론이 아니라 실제 체감되는 이야기입니다.
자주 묻는 질문
Q. 아이가 할 수 있는 걸 안 하려고 할 때 그냥 해줘야 하나요, 혼내야 하나요?
A. 저도 이 사이에서 오래 헤맸습니다. 결론적으로는 둘 다 아닌 세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. "지금 하기 싫은 마음 이해해.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는 해보자"처럼 감정을 받아주되, 해야 할 것은 관철시키는 방식입니다. 수용과 단호함을 동시에 담는 게 핵심입니다.
Q. 이상이 높은 아이는 어떻게 훈육하는 게 좋나요?
A. 이상이 높은 아이에게는 지금 당장 안 된다는 거절보다, 단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 훨씬 잘 통합니다. "나중에는 할 수 있어, 지금은 이 단계야"라고 가능성은 열어두면서 현재의 한계를 명확히 해주는 스캐폴딩 방식이 효과적입니다. 제 경험상 이 방식이 아이의 좌절 빈도를 꽤 줄여줬습니다.
Q. 훈육할 때 아이가 눈을 안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?
A. 저도 이게 제일 어렵더라고요. "아빠 봐, 엄마 봐" 하다가 목소리가 높아지면 역효과가 납니다. 아이 얼굴을 살짝 잡고 눈 높이를 맞춰준 뒤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게 기본이지만, 그러려면 부모가 먼저 감정을 가라앉힌 상태여야 합니다. 마음이 격한 상태에서 억지로 시작하면 훈육이 아니라 감정 싸움이 됩니다.
Q. 동생은 혼자 하려는데 첫째는 의존적인 게 성격 문제인가요?
A.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. 아이마다 기질이 다르고, 이상이 높은 아이일수록 자기 기준에 못 미치는 과제에 에너지를 안 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.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, 내면 기준이 달라서 나타나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. 어떤 상황에서 의존적인지 맥락을 살펴보는 게 먼저입니다.
결론
저는 아직도 매일 실수합니다. 아이를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 또 다른 상황이 오고, 어제 통하던 방식이 오늘은 먹히지 않습니다.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. 아이의 행동 하나만 보고 판단하면 틀린다는 것입니다. 짜증이 포기처럼 보여도 그 안에 높은 이상이 있을 수 있고, 의존처럼 보여도 자기주도 성향의 다른 얼굴일 수 있습니다.
훈육은 처벌이 아니라 가르침이라는 원칙, 단계적 접근으로 좌절 대신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, 그리고 부모의 감정 안정이 훈육의 선행 조건이라는 것. 이 세 가지를 붙들고 오늘도 조금씩 해보려고 합니다. 완벽한 부모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, 아이를 조금 더 정확하게 읽는 부모가 되는 게 지금 제 목표입니다.